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도전(태종 이방원) (문단 편집) === 방석을 택하고 방원에게 등을 돌리다 === 신덕왕후의 회유를 지속적으로 거절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신덕왕후의 죽음을 보고 그녀에게 매몰차게 군 점을 후회하고 끝내 세자를 적극적으로 보살피기로 마음 먹는다. 이후에는 세자의 버팀목 대접을 받아 그가 없으면 세자를 지킬 자가 없다는 이유로 명에 강제 송환될 뻔한 일을 이성계가 결단코 막기까지 한다. 이후 세자와의 강독 자리에서 세자에게 정안군과의 사이가 어떠한지를 묻는다. 자신에게 자상한 형이라는 답을 듣고 머뜩찮은 표정을 짓는다. 이제가 이방원에게서 수상한 움직임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여 정도전에게 경고하는데, 정도전은 잘못된 첩보일 것이라며 무시하려 한다. 이를 보면 신덕왕후의 유훈을 이어 받았음에도 여전히 이방원을 적대하고 싶진 않았던 것 같다.[* 똑같이 정몽주에게 죽을 뻔 했던 조준은 방원을 생명의 은인이라 칭하며 왕의 교과서인 대학연의를 선물로 주는 등, 이방원보고 왕위를 노리라는 듯한 제스쳐를 보냈다. 정도전 역시 정몽주를 죽인 이방원에게 생명의 은인이라 표한 적이 있는 만큼 조준 정도까진 아니어도 이방원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사병을 모으고 있다는 더 구체적인 정보를 말하자 더이상 무시하지 못하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신덕왕후(태종 이방원)|신덕왕후]]의 위패를 모신 사찰에 가려는 이성계에 동행하는 길에, 사병들을 데리고 군사 훈련을 하던 이방원을 트집잡아 이성계가 죽이려 하자, 세자 [[이방석(태종 이방원)|방석]]과 함께 만류한다. 이후 사찰에서, 방원 말마따나[* 이방원을 순군옥으로 데려가던 조영무에게, 이방원 역시 자신이 역심을 품었으므로 죽여야했다고 조영무에게 털어놓고 있었다.] 그를 죽였어야 했다는 이성계의 후회에, 정도전은 이성계에게 전하는 그럴 분이 못 되신다며, "[[정몽주(태종 이방원)|포은]]도 죽이지 못하셔놓고 [[이방원(태종 이방원)|아들]]은 죽이실 수 있겠습니까"라며 일침을 놓는다. 그리고, 자신이 정안군을 막아보겠다고 한다. 흥안군 이제로부터 민제의 사가에서 역모가 진행되고 있으며, 하륜이 책사라는 말을 듣고, 옥사에 가뒀던 정안군을 풀어주라고 했다고 하자, 어떤 누명을 씌워서라도 죽여야 한다는 이제의 말에, "전하께서 허락치 않으실 거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죽이라고 할 수 있겠냐"며 거부한다.[* 극중 이성계는 13~14화에서 이방원에게 두 번이나 칼을 빼들었고, 이방원은 처음엔 홧김에 차라리 죽이라고까지 했으나 결국 이성계는 이방원을 손수 베지 못했다.] 이후, 사신들이 명에서 참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도당에서 대책을 논의하는 가운데, 하륜이 정도전을 보내야했다면서 불평하자 그를 의심하며 그가 고려시절에는 낮에는 간신 이인임에게 붙어살고 밤에는 신진사대부에 붙어 살던 사람이 조선에 벼슬생활하면서 무슨 계획을 꾸미고 있느냐며 비난한다.[* 공교롭게도 [[이광기|배우]]가 [[하륜(정도전)|배우]]인지라 본이 아니게 셀프디스를 하게 되었다.] 이에 민제가 항의하자 "차라리 가만히 계시라.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소리 듣고 싶냐"고 하고, 민제가 발끈하자, "도적의 가문과 사돈을 맺으신 전하가 불쌍하시다"며 비난하고는 나가버린다. 이후 남은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야밤에 이성계를 만나 어떤 방법을 제시하며 그 길이 이방석을 보호할 방법이라며 윤허할 것을 청한다. 그 방법은 14회 말미에서 나온 사병 혁파. 정안군을 막기 위해, 정안군 개인의 신변은 건드리지 않고, 그의 지지 세력들과 힘을 견제하여 팔다리를 잘라 좌초시키려는 식으로 그를 막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 [[파일:(15) 이방원 vs 정도전.png|width=100%]] || 사병 혁파의 이유로 요동 정벌을 내세우는데, [[이방원(태종 이방원)|이방원]]이 그와 독대하면서, 사행길에 연왕 [[영락제|주체]]를 만났으며 그는 자신의 앞마당인 [[요동]]이 공격 당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인물이라면서 "지금 요동을 공격했다간 조선은 망합니다"라며 말리지만 "참고하겠습니다"라며 자르고 물러서려 한다. 이방원이 왜 숙부 마음대로 국정을 운영하냐는 식으로 정도전에게 권력이 쏠려 있다는 점을 비판하고 그 동안 이야기하던 "조화의 나라"냐며 따지자, 도리어 이방원에게 "왜 세자 자리를 자신의 것인데 뺴앗겼다고 생각하냐"고 받아치면서, [[정몽주(태종 이방원)|포은]]을 죽인 일은 [[토사구팽|대업의 작은 조각에 불과하며]] 그렇게 하지 않았어도 [[역성혁명|대업]]은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방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안면몰수나 다를 바가 없는데, 방원이 정몽주를 제거하지 않았다면 정몽주에게 꼼짝없이 죽을 운명이었고, 그걸 알기에 정몽주가 효수된 걸보고 자괴감에 통곡하는 이방원에게 목숨을 진 빚은 갚겠다며 감사를 표했었다. 그러나 그건 빈말이었고 개국 이후 정도전은 이방원을 조금도 챙겨주지 않았다.][* 다만 이 말에는 단순히 이방원의 이야기만 있는게 아니다. 정몽주가 그때 이방원에게 죽지 않았다면 '''정도전도 죽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어찌보면 자신이 그때 죽었어도 대업은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으며, 대업의 작은 조각에는 자신도 들어가는 것이다. 즉, 이방원이 정도전이 모든 권력을 틀어지고 조선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는 비난에 당신이나 나나 역사의 흐름의 일부에 불과하다(이 나라의 주도권은 이방원에게도 정도전에게도 없다)는 반박을 내놓은 것이다.] 대업의 가장 큰 공은 전하(이성계)와 중전마마(강씨)의 것이며 대업의 동반자들끼리 후계자를 정한 것이므로 정안군은 후계 문제를 포함한 국정에 개입할 자격이 없다고 선을 그어버린다. 그러면서 이성계는 이방원을 베지 못할 것이나 자신은 벨 수 있다며 경고한다. [[전주 이씨 가문(태종 이방원)#이제|흥안군]] 이제에게 [[삼군부]]를 맡긴 뒤, 안산 군수 [[이숙번(태종 이방원)|이숙번]]이 병사들을 이끌고 [[신덕왕후(태종 이방원)|신덕왕후]]의 묘를 보수하러 왔는데, 이숙번이 삼군부와 궁 앞을 지나는 것을 보고는 멈춰 세우더니, 곧장 능묘로 갈 것이지 삼군부는 왜 찍고 가느냐, 병사들에게 갑옷은 왜 입혔느냐, 상자에 든 것은 무엇이냐 코치코치 캐물으면서, 상자를 깠는데 병장기가 나오면 역도로 간주하여 순군부로 끌고 가겠다고 경고한다. 결국 상자를 열었는데 병장기 대신 곡괭이 등 토목용 장비가 나오고 이숙번이 "이것도 병장기라 생각하신다면 가져 가시라. 맨 손으로 일하겠다"며 투덜대자 그냥 이숙번을 보내준다. 이성계가 3년상을 마치고 환궁 도중 병환으로 도성 한복판에서 쓰러지자 어의에게 상태를 묻는데, 승하까지 대비해야 한다는 어의의 판단을 듣고는, 한씨 소생 왕자들을 모두 호출하여 딴 행동을 하지 못하게 별도의 행랑채에 가둬버린다. 남은이 이참에 세자의 안전을 위해서 세자에게 위협이 되는 왕자와 종친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권하지만, 정도전은 그러면 전하가 자신을 용서치 않고 벨 것이며, 그건 각오할 수 있으나, (자식들이 죽어서) 피눈물을 흘리는 전하를 뵐 용기가 없다며 남은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방원이 분명히 [[1차 왕자의 난/대중매체#태종 이방원|무언가]]를 꾸밀 것은 확실하다며 경계심을 유지한다. 다음날 이성계의 용태를 보러 가는 와중에 세자 방석이 방원과 이야기하는 것을 엿듣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